가을 나들이로 가볼 만한 고궁 투어 '덕수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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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들이로 가볼 만한 고궁 투어 '덕수궁' (1)
  • 김지수 기자
  • 승인 2019.09.19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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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주말 여행지, '덕수궁의 역사와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
가을을 맞아 이번 주말 서울 도심에서 가볍게 나들이할만한 곳을 찾고 있다면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덕수궁을 눈여겨보자. 사진/ 김지수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김지수 기자] 추석 연휴가 지난 이번 주 최근 들어 맑고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며,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가을을 맞아 이번 주말 서울 도심에서 가볍게 나들이할만한 곳을 찾고 있다면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덕수궁을 눈여겨보자.

덕수궁, 조선 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

덕수궁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다가 돌아온 후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 궁궐로 삼으면서 처음 궁궐로 사용되었다. 사진/ 김지수 기자

덕수궁 안의 자료에 따르면 “덕수궁은 조선 14대 왕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다가 돌아온 후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 궁궐(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처음 궁궐로 사용되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경운궁에 다시 왕이 머문 것은 조선 26대 왕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잠시 머물다가 경운궁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이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사진/ 김지수 기자

또한, “대한제국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분명히 밝히고자 했으며 대한제국 위상에 걸맞게 경운궁에 여러 전각을 세우고 궁궐의 영역을 확장했는데, 당시의 궁궐은 정동과 시청 앞 광장 일대를 아우르는 규모로 현재 규모의 3배 가까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외에도 “서구 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고종은 궁궐 안에 여러 서양 건축물을 세웠으며, 전각 내 전등과 전화 등의 신문물도 설치했다. 1907년 고종이 강압 때문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이름이 되었고, 고종은 1919년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고종 승하 이후 덕수궁은 빠르게 해체ㆍ축소되었다”라고 전해진다.

덕수궁 입구,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도

덕수궁 입구,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 사진/ 김지수 기자

덕수궁에 들어가기 전 시간에 맞춰서 꼭 봐야 할 것은 먼저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다. 교대의식은 오전 11시, 오후 2시와 3시 30분에 펼쳐진다.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란 용어는 경국대전 등의 자료에는 보이지 않으나, 직품과 직제형태로 나타나 있다고 한다. 궁성, 도성문 개폐 의식, 궁성 시위 의식, 행순 의식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 명칭을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라 칭하여 재현한 것이다.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란 용어는 경국대전 등의 자료에는 보이지 않으나, 직품과 직제형태로 나타나 있다고 한다. 사진/ 김지수 기자

이 의식은 조선 시대 궁궐의 문을 책임지는 관청으로 ‘수문장청’이 있었고, 수문장청에는 종6품의 수문장을 비롯한 참하와 수문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도성문의 개폐와 통행인을 검사하고 단속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이 의식은 조선 시대 궁궐의 문을 책임지는 관청으로 ‘수문장청’이 있었고, 수문장청에는 종6품의 수문장을 비롯한 참하와 수문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김지수 기자

다음 편에서는 덕수궁의 본격적인 탐방으로 덕수궁 안 건축물에 따른 조선 시대 이야기에 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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