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멍 다투멍? 제주 만리장성 ‘잣성’ 문화재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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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멍 다투멍? 제주 만리장성 ‘잣성’ 문화재 아닌 이유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7.19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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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성’, 토지주 재산권보다 못하다? ‘꼬닥꼬닥’ 걸어보니
잣성은 조선시대 때 한라산 중턱에 사는 주민들이 소와 말로부터 밭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돌담으로, 궁영목장의 존재를 증명하는 목축문화유산이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제주/ 이혜진 기자] “돌, 돌, 그저 돌이다. 밭과 바다 사이 경계선으로 높직한 돌담을 쌓아놓았다. 육지에서 논두덩이나 밭두덩을 이 섬에서는 돌로 담을 쌓는다.”(<동아일보> 1931년 8월18일) 일제 강점기 제주도 기행에 나섰던 한 여행자는 제주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제주도는 돌의 섬이다. 이방인들이 본 제주도는 사방이 온통 돌투성이와 돌담으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곳곳에 돌담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올망졸망한 밭들의 경계를 위해 쌓은 돌담은 제주시 구좌읍과 애월읍, 한림읍 등에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돌은 1930년대 중반 국어학자 권덕규가 ‘(제주도) 돌이라는 것이 마마(천연두)만히한 울멍줄멍한 얼음박이 돌’이라고 할 정도로 육지의 돌과는 달리 울퉁불퉁하고 거친 현무암으로 구성돼 이방인들의 눈에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17일 오후 제주도 잣성에 갔다. 잣성은 1700년대 후반엔 640리, 즉 250km가 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제주시에 있는 하잣성 구간 곳곳은 제주대학교, 회천리조트 등이 중간에 있어 끊어져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제주의 돌담은 형태와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됐다. 돌은 집이 되고 길이 되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시설이 됐으며, 생활도구와 신앙의 대상이 됐다. 집의 외벽으로 쌓은 축담, 울타리용으로 쌓은 울담, 집과 진입로를 연결하는 올레에 쌓은 올렛담, 밭에 쌓은 밭담, 무덤을 둘러친 산담, 목마장에 쌓은 잣성, 해안의 환해장성이나 진성에 쌓았던 성담, 고기를 잡기 위해 쌓은 원담 등 다양하게 돌담이 만들어지면서 제주도만의 독특한 돌 문화를 만들어냈다.

17일 오후 제주도의 돌담 중 잣성을 보러 갔다. 제주 전역의 잣성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상잣성 2곳, 중잣성 7곳, 하잣성 27곳 등 총 36곳이 있다. 이 중 제주시에 위치한 하잣성을 ‘꼬닥꼬닥(천천히를 의미하는 제주도 사투리)’ 밟으니 밭담보다 약간 높아 보이는 담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도 일정한데다 겹겹이 쌓여진 모습이었다. 

잣성은 조선시대 때 방목중인 말이 동사하거나 잃어버리는 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또 말이 농경지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았다. 잣성은 1430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이혜진 기자

잣성은 단순한 돌담이 아니다. 제주의 역사다. 방목 중인 말이 동사하거나 잃어버리는 사고를 방지하고, 말이 농경지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 즉 1430년부터 만들어졌기 때문. 초기에 만들어진 잣성만 165리, 64.8km에 이른다. 이후 목장별 경계를 위해 만든 잣성까지 합하면 1700년대 후반엔 640리, 즉 250km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었다면, 제주엔 잣성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날 간 하잣성은 중간에 끊어진 모습이었다. 제주대학교, 회천리조트 등 여러 건물이  중간에 자리 잡았기 때문. 잣성은 역사.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지만, 단 한 곳도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해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다.

잣성은 쌓여진 해발 고도에 따라 상잣성과 중잣성, 하잣성으로 구분된다. 잣성은 단순한 돌담이 아닌 제주의 역사 그 자체다. 사진/ 이혜진 기자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연구나 인지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는 탓이 크다. 잣성에 대한 연구는 2천년대 초반에 민간인의 석사논문에서 언급된 것이 처음. 

최근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용역이 부실했던 정황이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위원장 이경용) 행정사무감사에서 양영식 의원(연동 갑,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에 진행된 잣성 유적 실태조사를 보면 잣성 1소장에 대한 제대로 된 사실조사가 누락됐다”며 “용역 자체도 부실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6년 동부지역 잣성실태조사는 도내 제주목축문화를 알고 있는 기관이 용역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육지부의 도시계획전공자들이 모인 기관에서 진행했다. 보고서 역시 현장을 직접 다녀온 사진이 아니라 과거 잣성 관련 서적의 사진을 도용, 사진에 표시된 지번은 없는 지번, 똑같은 사진 두 개가 다른 지번으로 표시했다”며 “제주도 문화재위원회는 엄격히 용역 결과를 심의해야만 하는데도 보고로 그치는 등 사후처리도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잣성은 단일 유물로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선형의 유적이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다. 첫 연구도 2천년대 초반 민간인의 석사논문에서 언급됐을 뿐이다. 도에선 사유지라는 이유로 문화재 지정을 우려하고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유관 기관에선 서귀포시 표션면에 위치한 가시리 잣성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나머지 35곳의 잣성에 대해서는 조사의 한계와 사유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회의적인 입장이다. 

도청 사업소 중 하나인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의 역사문화재의 한 관계자는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잣성은 최근에서야 관심을 받고 있다. 실태조사를 어느 정도 끝내긴 했지만 모든 잣성을 다 조사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문화재적 가치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 문화재로 지정했을 경우 사유재산권을 침해의 문제가 있다. 최근 제주도 전역의 잣성을 조사하니 대부분 그 일대가 사유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잣성을 문화재로 지정했다간 300m 반경이 문화재보존영향 검토대상구역이 돼서 (토지 소유주가) 인근에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없게 된다. (만약 잣성을 문화재로 지정하게 되면) 토지 소유주 측에서 ‘왜 내 동의도 안 받고 진행하느냐’는 민원이 나올 것”이라며 “게다가 잣성만 (문화재 지정에) 올인하기엔 다른 곳들도 많아서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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