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맛이 나주에 있는디, 거시기 그냥 가면 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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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맛이 나주에 있는디, 거시기 그냥 가면 섭하지”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7.03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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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는 흑산도? 삭힌 홍어의 본고장 영산포
나주에는 영산포가 있고 그 옆에 홍어의 거리가 있다. 거리엔 지난 2017년 VJ특공대에 출연한 홍어찜백반 맛집이 있다. 가운데 고등어 조림 옆에 홍어찜이 있다. 식당이 육교 밑이라 네비게이션에 안 나오기도 한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나주는 맛의 고장이다. 옛부터 남도의 각종 집산물이 모이던 영산포를 끼고 있기 때문. 지난 30일 눈과 혀가 즐거운 나주에서 ‘미식 여행’을 즐겼다. 

지난 30일 오전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포 홍어거리에 위치한 'ㅂ 식당'에서 먹은 홍어찜. 젓가락으로 가르니 홍어의 싱싱함과 탱탱한 육질을 느낄 수 있었다. 약간만 삭혀 홍어의 고유한 맛을 냈다. 사진/ 이혜진 기자

‘단돈 8000원’ 삭히지 않은 홍어찜

나주 시내에서 영산대교를 건너면 영산강 바람에 섞여 홍어 삭은 냄새가 어렴풋이 난다. 강변을 따라 홍어음식점 10여 개, 가공 판매 업체 30여 개가 밀집해 있기 때문. 10여 년 전만해도 일제 적산가옥을 개조한 상가들에 홍어 전문점이 30여 곳이나 됐었지만.  

이곳에선 요즘도 홍어 없는 잔치는 잔치가 아니다. 이날 비록 잔치엔 못 갔지만, 잔치 느낌을 내러 영산대교 사거리 옆에 위치한 한 홍어 전문 음식점에서 홍어찜 백반(8000원)을 먹었다. 2017년 KBS ‘VJ특공대’에 나왔을 땐 7000원이었다. 삭힌 홍어를 못 먹는 이들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맛이다. 사실 요즘 남도 사람들은 오히려 덜 익은 홍어를 더 찾는다. 

나주 홍어에 대한 기록은 200년 전부터 있었다. 18세기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주요 인물인 정약전(1758∼1816)은 자신의 저서 자산어보(1814)에서 “나주 사람들은 홍어를 삭혀서 먹는다”고 썼다. 삭힌 홍어의 본고장이 흑산도가 아닌 영산포인 이유다. 해당 지역은 영산도 주민들이 고려 조정의 공도정책에 따라 이주해 살면서 홍어 산지로 이름을 알렸다.

영산포 홍어거리의 한 식당에서 나온 홍어삼합. 홍어삼합은 삭힌 홍어, 삶은 돼지고기, 묵은 김치를 함께 먹는 서남해안 특산요리다. 이질적인 음식이 어울려 절묘한 맛을 낸다는 데 삼합의 묘미가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코가 ‘뻥뻥’ 곰삭은 홍어 

같은 날 저녁 올해로 18년차인 인근의 다른 홍어 전문점에도 갔다. 그러자 입구에서부터 알칼리성 냄새가 온 몸을 감쌌다. 

안으로 들어가자 가게 관계자는 “홍어는 ‘코’를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이라고 권했다. 코가 움찔움찔했지만 한 입 먹었다. 소설가 황석영이 홍어를 처음 먹어본 후 토해낸 말이 떠올랐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처음엔 투박하지만 결국 몸에 이로운 속맛이 나주 사람들과 닮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대표적인 메뉴는 홍어삼합(칠레산·25000원). 톡 쏘는 홍어에 잘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곁들이면 끝이다. 여기에 막걸리를 곁들여 ‘홍탁삼합’이라고 부른다. 식당에선 홍어무침(칠레산·20000원), 홍어튀김(칠레산·10000원), 홍어전(칠레산·10000원)과 나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홍어보리애국(칠레산·7000원)도 즐길 수 있다. SBS '백종원의3대천왕' 등 10여 곳의 방송에 출연한 유명 맛집이다. 나오자마자 시큰해진 입맛을 커피로 잡았지만. 

나주시 영산동의 한 홍어 전문점에서 주방장이 삭힌 홍어의 포를 뜨고 있다. 홍어는 남도에서 잔치음식의 중심이고 제사 음식의 시작이다. 국산일 경우 항상 귀한 몸값으로 대접을 받는다. 사진/ 이혜진 기자

토종 홍어 빈자리 칠레산이 대신

이곳에선 국산 홍어도 판다. 하지만 이제 국내에서 잡히는 홍어는 거의 없다. 가끔 예기치 못한 풍어로 뜻밖에 국산 홍어 맛을 볼 수도 있지만 값이 비싸다(홍어삼합 기준 50000원). 아마 나주 물고기 중 가장 높고, 크게 노는 놈일 것이다. 

나주에서 칠레 홍어를 처음으로 판 사람은 인근 다른 홍어 전문점의 대표다. 부산의 한 수산대학을 졸업한 그는 지난 1983년 원양어선을 타고 칠레에 갔다가 홍어를 알게 됐다. 우리 홍어와 맛이 가장 닮은 것들을 들여온다. 비록 살 씹히는 맛은 다르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남도의 홍어식도락 문화가 오늘날처럼 대중적으로 보급되진 못했을 것이다. 

홍어를 칠레에서만 들여오는 건 아니다. 이 식당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아르헨티나·우루과이산들이 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홍어어물전만큼 세계화에 일찍 눈뜬 곳도 없을 것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홍어문화는 전라도 특유의 것이되 이젠 전국구에서 즐기고 있으니, 문화변동의 중요 사례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나주시 영산포 홍어거리의 한 홍어 전문점에서 먹은 홍어 코와 뱃살. 옛 말에 홍어코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홍어 맛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한입 넣자마자 쎄한 맛에 후욱 숨이 막힌다. 사진/ 이혜진 기자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 귀한 생선이 왜…

그런데 나주엔 재밌는 속담이 하나 있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성기)’라는 속담이다. 왜 귀한 홍어가 ‘만만한 것’일까. 

‘자산어보’엔 “수놈에는 양경이 있다. 그 양경이 곧 척추이다. 모양은 흰 칼과 같은데, 그 밑에 알주머니가 있다. 두 날개에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암수가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합한다. 낚시를 문 암컷을 수컷이 덮쳐 교합하다가 함께 잡히기도 한다. 결국,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어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는 문구가 있다. 그래서 어부가 수놈을 잡으면 우선 홍어 거시기부터 잘라버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됐다. 

실제로 가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홍어는 암수가 붙은 채로 끌려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낚시를 문 암컷을 수놈이 덮쳐서다. 이들은 갑판 위에서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래서 옛날 어부들은 “그 꼴이 거시기하다”며 웃었다고 한다. 

한편 영산포를 지나 다시면 회진마을로 가는 길목엔 구진포가 있다. 이곳은 영산강 뱃길이 끊기기 전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나루터였다.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구는 쇠락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옛맛을 잊지 못해 구진포 장어집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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