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줄경매…경관은 뛰어나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서울시내 전통정원 성락원(명승 제35호)의 주인으로 알려진 조선 철종 시기 이조판서 심상응이 허구 인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사적에 이어 명승으로 지정된 근거가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오후 ‘유령 인물의 별장’ 성락원에 갔다.
높게 솟은 성락원의 철제 대문으로 들어서자 북한산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청량했다. 새소리, 바람소리도 들렸다. 도심 속 별세계다. 속세와 담을 쌓고 산중에서 고요한 계곡을 즐기려던 성락원의 ‘진짜 주인’의 기품을 느꼈다. 지난 12일 정원·누정 연구가인 김세호 박사(성균관대)가 ‘환경과 조경’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이곳의 실제 주인은 19세기 문인 황윤명(1844 ~ ?)이었다. 내시로 일하다 30세에 종1품으로까지 올라섰던 사람이다.
성락원을 전남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한국 3대 전통 정원’으로 불러도 큰 무리는 없다. 조선의 전통적인 정원 양식을 간직했기 때문. 총면적이 1만 4407㎡(약 4360평)에 이르는 이곳은 앞뜰과 안뜰 그리고 바깥뜰로 이뤄져 있다. 바깥뜰엔 1953년 지어진 ‘송석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성락원은 뛰어난 경관때문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G20 정상들이 식사를 즐기고 차를 마시고 간 장소다. 당시는 이곳이 ‘유령 인물’ 심상응의 별장으로 알려졌던 때다. 지난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재청과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성락원의 문화재 지정 근거가 된 심상응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도 성락원에 갔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연못이다. 이름은 각각 ‘송석정’과 ‘영벽지’다. 영벽지 서쪽 암벽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장빙가’(큰 고드름이 매달린 곳)라는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황윤명이 누군가의 정원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면, 어린 꼬마가 70대 할아버지에게 개인 소유의 별장에 글을 써달라고 졸랐던 셈이다. ‘완당’이라는 추사의 낙관이 있지만 정말 그의 작품인지는 알 수 없는 셈.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성락원은 이번달 11일까지만 한시적으로 문을 열 예정이었다. 완공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관람일자도 매주 월·화·토요일로 제한했었다.
성락원은 상시 관람 가능하다. 다만 최소 한 달 전엔 예약해야 한다. 14일 오후 성락원의 운영 주체인 한구가구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달 예약도 다 마감됐고 다음 달 예약은 영문 가이드 투어만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라며 “요일은 다른 때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7월 11일과 31일을 제외한 모든 날짜에 한국어 가이드 투어는 이미 마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운영 주체 측은 자금난을 겪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성락원은 현재 경매로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운영 주체 측은 자금난을 겪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성락원은 현재 경매로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락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다. 김영주 의원은 12일 공식 블로그에 올린 보도자료를 통해 “성락원 종합정비계획에 국민 혈세 56억원(국비 39억원, 지방비 16억원)이 투입된 만큼 1992년 사적 지정과 2008년 명승 지정 당시 어떤 근거자료로 성락원이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으로 둔갑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선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세호 박사는 같은 날 ‘환경과 조경’에 기고한 글에서 “문화재청에서 관련 학자들이 모여 사료를 검증 중”이라며 “성락원의 가치를 정립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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