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위한 제주 4·3 유적지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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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위한 제주 4·3 유적지 가보니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5.0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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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친화적 여행지 있지만 편의시설·교통수단 부족
휠체어를 탄 장애인 여행객들이 제주시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의 관광지 '박물관은 살아있다' 근처를 지나가고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매년 1천5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제주도에 간다. 하지만 제주는 누구에게나 열린 관광지가 아니다.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지난달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250만 명 중 93%는 여행을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실제 여행을 다녀온 비율은 9.3%.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여행에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28일까지 장애인이 갈 수 있는 4·3 유적지를 찾기 위해 곳곳에 다녀왔다. 국가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7년 7개월간 벌어진 제주4·3의 희생자는 약 3만 명으로 추정된다. 휠체어 접근성을 기준으로 700곳이 넘는 4·3 유적지 중 장애인들이 가기 좋은 곳은 어딜까.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하귀초등학교에 4.3 사건을 추모하는 현수막(왼쪽 위)과 고 이재창 선생의 공덕비(오른쪽)가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해당 기간 방문한 곳 중 장애인이 가기 가장 좋은 4·3 유적지는 제주4·3평화공원. 4·3사건을 바로 알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8년 건립된 이곳엔 장애인화장실과 장애인 엘리베이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휠체어 사용자 이용 가능 매표소, 휠체어 사용자 단독접근 가능 구역, 휠체어 대여 서비스 등이 마련되어 있다.

다만 점자 안내 표지판은 설치되어있지 않다. 또 외부에 설치된 장애인화장실로 가는 길에 바닥이 파여 있어 바퀴가 빠질 우려가 있다. 이 화장실은 세면대에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어 이동하기 편하지만, 대변기 측면 공간이 비좁다는 단점도 있다. 잔디밭 관람로 초입의 배수로에서도 바퀴가 빠질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관람로도 문제다. 내부관람로엔 5도 내외의 경사가 여러 곳 있어 동반자의 도움이 필수다. 외부관람로도 휠체어의 진입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일부 구간에 요철이 있는 바닥이 있어서다. 출입구 인도 초입과 2층 출입문으로 올라가는 외부 경사로에 다소 약한 수준의 경사가 있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제주4·3평화공원 외관. 장애인이 쉽게 진입할 수 있게 인도의 일부 구간에 턱을 없앴다(오른쪽 위). 이 곳에선 휠체어도 대여할 수 있다(오른쪽 아래). 일부 구간에 계단이 있지만 관람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왼쪽 아래).

다음으로 가기 좋은 곳은 항일기념관. 이곳은 15살 어린 나이에 4·3을 겪은 김이선 씨(87)가 자신의 밭을 내놓아 1997년 8월 15일 문을 열었다. 4·3 관련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이곳엔 장애인화장실과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 휠체어 사용자 이용 가능 매표소, 휠체어 사용자 단독접근 가능 구역, 휠체어 리프트, 점자블록 등이 있다.

그러나 90도로 꺾이는 구간에 점자블록이 잘못 설치되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전시관 내 계단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불편함도 있다.  

사적 제380호인 목관아지도 갈 만하다. 목관아지는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절 발포 현장 관덕정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던 곳이다. 이곳엔 장애인 화장실과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 휠체어 사용자 단독접근 가능 구역 등이 있다. 그러나 관람로의 바닥 재질이 평탄하지 않아 휠체어를 끌고 가기 불편하다. 일부 구간에 계단과 경사로도 있다.

제주시 삼도2동에 위치한 목관아지. 일부 구간에 계단과 경사로, 비포장길이 있으나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관음사도 장애인이 가기 편한 곳 중 하나. 관음사는 토벌대에 밀린 무장 자위대가 마지막으로 항쟁을 펼친 거점으로, 곳곳에 돌로 쌓은 참호(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땅을 파서 만든 도랑)가 남아 있다. 이곳엔 장애인 화장실이 있으며 출입구의 문턱과 바닥 간의 경사가 없어 휠체어 사용자의 단독접근이 가능하다. 인근에 위치한 ‘관음사 신비의 도로’도 마찬가지. 다만 절 내부로는 휠체어의 진입이 어렵다.

새별오름도 4·3 사건과 관련된 곳 중 하나.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이곳에서 봉화가 오른 뒤, 제주도 전역에서 350여명의 무장 자위대가 도내 12개지서(경찰 본서에서 갈려 나간 관서)를 공격하면서 4·3 봉기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들불축제가 열리는 이곳에선 산에 직접 오르지 않아도 ‘오름 불놓기’라는 행사를 통해 오름이 통째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입구엔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도두봉도 중요한 4·3 유적지다. 도두봉은 당시 제주도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들어갔던 동굴과 피해자들이 살해된 학살터가 있다. 이곳은 뒤로 펼쳐진 바다의 풍광과 무지개색 방호벽이 잘 어울려 ‘제주시 숨은 비경’으로 선정된 곳이다.

4.3사건 당시 하루만에 주민 300여명이 학살당한 제주 북촌리 너븐숭에 설립된 '북촌너븐숭이기념관'. 이 곳엔 장애인주차장(왼쪽)과 장애인화장실(오른쪽)이 있지만, 장애인화장실이 청소부들의 창고처럼 사용되고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또 인근의 어영해안도로와 함께 올레 17코스 중에서도 바다 풍광이 좋기로 유명하다. 17코스는 제주올레가 선정한 ‘휠체어 올레길’로 알려져 있다. 도두봉 입구엔 장애인화장실이 있으며 근처에 도두봉 정류소가 있다. 정류소는 지난해 5월 도입된 제주시티투어버스(저상버스)로 차가 없는 휠체어 여행객들도 전용 좌석에 앉아 도착할 수 있다.

참고로 제주시티투어버스는 제주 북부지역을 도는 순환형으로 22곳의 관광지를 돌아오는 데 2시간이 걸린다. 일일권을 끊으면 관광지마다 자유롭게 내렸다 타면서 하루 종일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지난 2017년 말 생긴 서귀포 시티투어버스도 휠체어 전용 좌석이 있다. 하지만 도심 생활 코스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주도에 장애인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많은 것은 아니다.

ㅈ관광버스 업체가 운영하는 장애인 전용 리프트버스. 제주도의 저상버스 운행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사진/ 이혜진 기자

8일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내 전체 버스노선 209개 중 저상버스 운행 비율은 10%로 전국 최하위권에 머무는데 그쳤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주도는 장애인 콜택시를 80여대 운행하고 있지만, 하루 평균 예약 건수가 700건 이상으로 예약 대기가 많아 성수기 때는 사실상 이용이 어렵다.

특수개조 차량도 드물다. 8일 제주도 운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도내 장애인 관광객을 위한 특수개조 차량은 리프트가 설치된 전세버스 3대와 렌터카 12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렌터카의 경우 제주도 1개 업체에서만 경사로 리프트 차량 2대, 핸드컨트롤 차량 7대(오른쪽 3대·왼쪽 4대), 한발 장애용 차량 3대 등을 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특장차량은 그 대수가 한정돼 있다는 이유로 일반 차량보다 대여 비용이 훨씬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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