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서핑' 낯선 남성의 집에서 무료 숙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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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서핑' 낯선 남성의 집에서 무료 숙식해보니
  • 이혜진 기자
  • 승인 2019.05.04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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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바탕으로 하지만 위험하기도
지난해 12월 요르단 페트라에서 만난 젊은 남녀가 '카우치서핑'을 통해 현지 숙소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잠 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카우치서핑 홈페이지 캡처

[트래블바이크뉴스=이혜진 기자] 뜻밖의 룸메이트, 위험한 호스트. 이들을 여행지서 만나긴 어렵지 않다.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을 하면 된다.

카우치서핑은 잠을 잘 수 있는 소파를 의미하는 ‘카우치(Couch)’와 파도를 탄다는 뜻의 ‘서핑(Surfing)’을 합성한 단어다.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기업으로, 일종의 ‘숙소 품앗이’다. 지난 2004년 미국 보스턴의 대학생이었던 케이지 펜튼(41·Casey Fenton)이 시작했다.

카우치서핑의 창립자 케이지 펜튼(41·Casey Fenton). 사진/ 유튜브 'Reinvent'

카우치서핑은 여행자와 소파(잠자리) 제공자를 이어주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선 ‘에어비엔비(Airbnb)’와 비슷하다. 하지만 카우치서핑은 돈이 오가지 않는다. 언젠가 자신도 낯선 여행지에서 누군가의 집에 공짜로 머물 수 있길 기대하면서 남는 소파를 대가 없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경제(Gift Economy)’라고도 부른다.

또 쓰지 않는 자원을 나눠 쓰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에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플랫폼 기업이 이익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라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KBS2에서 방영한 ‘하룻밤만 재워줘’는 카우치서핑을 예능으로 풀어낸 프로그램이다.

방송인 이상민(45)이 외국 여행 중 낯선 여성에게 동침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 KBS2 '하룻밤만 재워줘'

카우치서핑은 아직 우리나라에선 낯선 개념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 200여 국가, 20만여 도시에서 1400만 명 이상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특수를 기대했던 런던 호텔들이 이 카우치서핑 때문에 손해를 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 윤진서(37)도 지난해 결혼하기 전까지 카우치서핑을 즐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궁금증이 생긴 기자는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노형동의 한 아파트에서 ‘서퍼(Surfer, 또는 Catcher)’가 됐다. ‘무조건 아끼고 체험하자’는 당초 여행 취지와도 잘 맞았다. 카우치서핑은 여행자의 새로운 등로가 되 줄 터였다.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테니. 

카우치서핑을 체험하기 위해 지난 24일 오후 제주시 노형동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사진/ 이혜진 기자

하지만 몸과 마음이 부담되기도 했다. 남의 집에 대책 없이 가도 될까? 카우치서핑이 나중에 빚이 되면 어쩌나 염려하기도 했다. 호스트는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자신도 나중에 공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삶도 단 한번이다. 객기와 패기 사이에서 도전을 택했다. 도전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이 날 찾은 남성 호스트 ㅇ씨의 집엔 방이 2개 있다. 혼자 사는 그는 늘 서퍼를 받는다. 인근 ㅎ대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돈을 버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그럼에도 서퍼들에게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선뜻 알려준다.

숙소 방 문에 카우치서핑을 뜻하는 표식이 걸려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그에게 “낯선 사람을 내 집에 받아들이는 일이 버겁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난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며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이처럼 그가 서퍼를 신뢰하는 이유는 카우치서핑의 인터넷 커뮤니티(couchsurfing.org) 때문. 실제로 카우치서핑의 이용자들에겐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이들은 커뮤니티에서 서로의 인생관과 가치관, 관심영역과 경험 등을 나누며 상대를 이해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을 연다. 대량 소비 경제에선 브랜드와 광고, 개인의 소유가 경제적 가치를 결정짓는 반면, 공유 경제에선 평판(신뢰도)과 참여(네트워크), 경험이 더 중요하다. 공유 경제는 시장의 구조가 아닌 사회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공유 경제'의 한 방식인 카우치서핑에선 이용자의 참여와 경험 횟수가 중요하다. 사진/ 카우치서핑 홈페이지 캡처

물론 카우치서핑에도 단점은 있다. ㅇ씨는 “이 일이 재밌지만 맨날 빨래하고 음식해줘야 해서 힘들다”며 “그래도 (카우치 서핑은)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의문스럽다. 호스트가 나중에 서퍼가 되어 공짜 숙식하려는 ‘진짜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닐까.

여성 서퍼와 남성 서퍼가 카우치서퍼 호스트의 집에 함께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ㅇ씨의 아파트에서 만난 여성 서퍼 ㄱ씨는 “돈이 없어서 카우치서핑을 시작했는데 여러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중엔 의사와 무명 연예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지금은 애용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카우치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의 ‘퀄리티’를 나타내는 지표는 ‘사람’이다. 그저 현지인의 삶 속에 끼어들어 호스트와 서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카우치서핑은 ‘사람을 만나는 여행’인 것이다.

카우치서핑 서퍼들이 호스트에게 남긴 방명록.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쓰여있다. 오른쪽 아래는 호스트가 서퍼들에게 당부하는 사항. 사진/ 이혜진 기자

다만 주의할 점도 있다. ㄱ씨는 “(남성 호스트 중 여성 서퍼와)성관계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 이 많더라”며 “특히 유럽에선 자신의 손녀보다 어린 여성을 초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이상형만 서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낯선 남성과 거실에서 자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면 나쁜 호스트를 걸러낼 방법은 없을까.

카우치서핑은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다. 사진/ 이혜진 기자

ㄱ씨는 “사전에 연락해서 괜찮다 싶은 느낌이 오는 사람이 있고 아니다 싶은 사람이 있다”며 “(호스트가) 남성일 경우 그 사람이 (나를 헤치지 않을) 게이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과거 카우치서핑을 하던 한 여성이 현지인에 의해 폭행 및 살해된 후 시신이 유기되는 사건이 일어난 바 있다.

서퍼가 카우치서핑을 인증하는 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퍼의 인원이 여러명인 경우 현수막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사진/ 이혜진 기자

지난 2015년 CNN 등 주요 외신은 이집트계 미국 여성 달리아 예히아(27)가 네팔 수도 카트만두 서쪽에 있는 포카라에서 살해당했다고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현지 언론들은 용의자가 교사 나라얀 파우델(30)이며 숨진 여성의 돈을 갈취하기위해 망치와 막대기 등으로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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